청룡문화제의 탄생
청룡문화제는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 일원에 전해오던 임금님의 친림제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현한 우리의 전통문화 행사이다
오늘의 청룡문화제가 동대문구의 대표적 전통문화행사로 자리 잡게 된 시작은 1991년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시작된 지방자치제를 위한 지방의원 선거에서부터이다. 당시 용두동의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한 김영섭 보존위원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전통문화와 지역 축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실현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공약 중에 주민 화합과 문화의 전통 계승을 위한 공약으로 용두제향을 중심으로 하는 주민 화합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김영섭 위원장이 동대문구의회 의원에 당선됨으로 그 문화 공약이 지켜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1년 5월 26일 제1회 '용두제 및 한마음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5월에 개최하였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제2회 행사부터는 주민들의 시간적 부담이 덜한 매년 10월에 개최하기로 하였다. 온 주민이 한데 모일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없어 부득이 용두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행사를 개최하게 되었다. 그 후 제3회 행사 시에는 성균관에 제례에 대한 고증을 의뢰하는 한편 의례에 관한 지도를 받아 제례와 함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행사의 규모를 키우면서 그 명칭을 '용두문화제'로 명명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서울정도 600년이 되는 1994년에는 동대문구를 대표하는 전통문화행사로 선정되어 동대문구 25개 동 구민이 참여하는 행사로 시행되었으며, 각 동 대표의 국악경연대회와 민속씨름대회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한편 김영섭 위원장은 실록에서의 문헌 찾기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서울시사 편찬위원이었던 강훈덕 교수가 직접 용두동과 제기동 지역의 원로 어르신들에게서 녹취하였다는 내용의 원고를 보존위원장의 개인 사비를 들여 입수하였고, 또 동경제국대학 한국학 연구소에 보관 중인 『조선의 전설과 설화』라는 책자와 『경성의 향토조사에 관하여』라는 책자에 용두제의 기원이 되는 제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후 계속적인 문헌 조사를 통하여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에서 순종실록에 이르기까지 '오방토룡제'의 첫 번째 제사인 '동방청룡제'가 용두리 지역에서 거행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세종실록지리지를 통하여 선농단이 있던 지역에 우사단과 함께 동방토룡단도 조성되었으나 일제시대에 이르러 우리의 전통문화는 물론 용 문화까지도 말살하는 정책에 포함되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용 문화에 더욱 매진하여 중국과 한국의 용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독창적인 용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연구를 거듭하였으며, 용의 존재가 중국에서는 천자를, 한국에서는 임금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만큼 숭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일제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우리 땅 이름에 붙은 '용' 자마저도 없애려고 창지개명을 하고 용이라 부르는 산맥의 혈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노력했음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일본의 국왕은 용포를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용 문화에 대한 고급스러움을 미처 알지 못하고 용이라면 그저 중국에서 건너온 것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이러한 우리의 전통문화를 용 문화로 승화하여 지역의 대표 축제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1995년부터는 실록을 바탕으로 임금님의 행차를 서울시 최초로 민간 차원에서 재현함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 또한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만드는 민간 주도형 행사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한편 초등학교 교육의 자치화에 따라 서울시 동부교육청 산하 동대문구와 중랑구의 초등학교 3학년 사회교과서에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행사로 '용두문화제'가 수록됨으로써 지역 전통문화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2000년 7월 29일 용두문화제의 발전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지역의 학계, 언론, 문화, 행정 등 다분야에 걸친 인사들이 모여 의견을 수렴한 결과, 동대문구는 서울의 동쪽이며 동양철학의 음양오행 상 동쪽은 청색에 속하므로 용두문화제의 명칭을 '청룡문화제'로 바꾸자는 의견에 따라 이후 이름을 변경하여 개최하게 되었다.
그런 한편 김영섭 위원장은 그동안 조사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향토사료 논문공모전에서 '한양의 용 문화와 오방토룡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함으로, 청룡문화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편 우리 용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으며, 이는 청룡문화제의 정체성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청룡문화제는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 기간 중에도 서울의 전통문화행사로 지정되어 다수의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행사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하였다.
동대문구 용두동 지역에 다수의 구민이 모여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용두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행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몹시 안타까워했던 김영섭 위원장은, 동대문구청 앞 용두공원 조성과 함께 열린 공간으로의 장소 이전을 통하여 제2의 도약을 계획하며, 동대문구는 물론 서울시 전체의 용 문화 시발점으로 청룡문화제가 자리를 잡아가기를 소망하였고, 이를 통하여 서울시의 전통문화 행사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최초 청룡문화제는 김영섭 위원장 한 사람의 지역 사랑과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낳은 땀의 결과물이었지만, 이를 키워온 것은 서울의 동대문구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의 힘의 결정일 것이다. 23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청룡문화제는 그 의미가 남다르며, 이무기가 용으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듯이 청룡문화제 역시 어느 한 장면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과 같은 역사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지 발전시켜 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용 문화 축전으로 커나가야 할 것이다.

